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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術世界 2003. 06) 미술품 절도단, 그 실체를 밝힌다
2004-07-22 16:52:31
미술품 절도단, 그 실체를 밝힌다.
국립박물관이 털리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절도 사건을 넘어 온 국민초미의 관심으로 떠올랐으며, 대외적으로도 우리의 문화적 자긍심과 자존심이 무참히 손상된 희대의 사건으로 인식될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문화재뿐만 아니라 주요 고미술품과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도난당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자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대범한 범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누구인가? 일명 미술품절도단은 생각보다 조직적이고 치밀했으며, 범행수법 또한 대담했다. 이번 현장추적을 통해 그들의 실체를 밝힌다. 몇 개월 동안 서울지방경찰정과 비밀리에 활동 중인 미술품절도단 전문 검거반의 협조, 실제 수감 중인 전문 절도범의 생생한 옥중 인터뷰 등을 통해 미술품 절도의 실례를 알아봤다. 지면 관계상 적잖은 부분을 싣지 못한 점은 크게 아쉬우며, 앞으로도 본지는 미술계를 위해하는! 음성의 그늘을 과감히 찾아 나설 것이다.
국내 미술품 절도범, 현실 그 자체다
첨단장비로 무장한 꽤 능력 있는 도둑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은 은행이 아닌 미술관을 터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도둑=나쁜 놈"이라는 상식을 잊은 채 두 손 모아 그들이 성공하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목적 달성 후 유유히 떠나는 순간 모두들 가슴 벅찬 감동에 빠진다. 이러한 감동은 훔치고 싶은 잠재의식을 충족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도둑이 멋지고, 심장박동수를 조절하는 스릴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미술품 절도범은 어떨까? 8등신 몸매가 쫘악 들어나는 특수제작 된 옷을 입고, 야간투시와 적외선탐지기가 부착된 고글에 듣도 보도 못한 장비가 가득한 검정색 가방을 매고 있을까?
절대 아니다. 국내 미술품 도둑은 되도록 드러나지 않는 의상을 대충 걸친 후, 자신의 머리사이즈에 맞는 몇 개의 구멍 난 두건을 뒤집어쓰고, 야시에 자신만이 아는 집안에 식칼을 들고 쳐들어간다. 들키든 말든 상관없다. 작정을 하고 쳐들어간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바로 공포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은 일반 절도범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 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들은 미술품이 집안에 있다는 것을 이미 확인하고 계획 하에 쳐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미술작품이나 골동품을 선호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살인까지도 각오하고 담을 넘어 들어 현금을 훔치지, 어렵게 미술품을 훔쳐서 힘들게 현금으로 바꾸려는 걸까? 이러한 의문은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 장영권 형사의 짤막한 답변에 금새 사라진다. "팔 곳이 있으니까 훔치죠. 절도범 중엔 꼭 장물을 유통하는 전문가가 있거든요. 범죄의 세계에서 고서화를 감정하고 미술품을 사고파는 전문가가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습니까? 제가 아는 사람만 전국에 2-30명은 됩니다." 장형사는 이와 같이 말하며 미술품 절도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뉜다고 전한다. 우선 하나는 미술품전문가 중심의 경우와주도아래 이뤄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 절도 조직이 미술품전문가와 함께 범죄를 공모하는 것이다.
한달에 크고 작은 미술품 절도가 3건 이상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한달에 크고 작은 미술품 절도가 2-3건 이상 발생한다고 한다. 이중 범인이 체포되어 작품을 회수하는 경우는 약 40% 안쪽이고, 60% 이상의 미술품들이 국내외로 팔려나가 찾을 수 없다. 범인들이 미술품을 훔치고 해외로 가져가는 것은 증거를 남기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 밀수는 다른 밀수사건에 비해 국제적인 수사가 잘 이뤄지지 않는 형편인데, 절도범들은 이를 이용하여 국내에서 미술품을 훔친 후, 해외로 가지고 나간다. 이러한 밀매는 주로 중국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거래는 현금이 아닌 작품과 작품으로 교환된다. 한국의 미술품을 들고 나가 중국의 미술품과 교환하는 것이다.
그 후, 교환하여 밀수한 중국의 미술품을 화랑가에 걸고 버젓이 판매를 하는데, 중국에서 가져온 미술품이기에 피해자가 없고, 미술품 판매 경로가 불분명하여 증거를 잡지 못해 결국 체포에 실패 한다고 한다. 또한, 수사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2년 전부터 인사동 등 종로 일대에는 대도 조세형 밑에서 활동하던 절도경력자 등이 노점상 등을 하며 사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교도소에서 만나게 된 인연은 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본인은 설령 마음을 잡았다고 해도 주변인들과의 교류 중에 미술품에 대한 정보를 나눔으로써, 범죄 대상을 제공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미술품 절도단, 당신을 노린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미술품 절도범 세계에도 소위 등급이 있다. 이중 몇 명은 수십 년간 국내 보물급 미술품과 골동품을 해외로 밀매 해온 노하우를 살려 직접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배후에서 조정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건을 예로 들자면, 2000년 1월 충북에서 있었던 4인조 미술품 절도단 사건을 들 수 있다.
절도범 김○○, 권○○, 이○○, 장○○로 이루어진 이들 4명은 지난 2000년 8월 특가법위반 및 특수절도, 장물취득의 혐의로 체포되어 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의 범행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절도범 김씨를 제외한 권, 이, 장씨 3명은 1999년경 절도죄로 인해 경북 청송군 소재의 청송보호감호소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적잖은 시간을 함께 보낸 끝에 1999년 11월 출소를 앞두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이씨와 장씨 앞에 S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S는 김씨의 행동책을 맡았던 자로, 이씨와 장씨에게 '출소 후에 뭐 마땅히 할일 없으면 한번 대구로 내려가서 김씨를 만나봐. 내 소개로 왔다고 하면 꽤 괜찮은 일거리가 있을 거다'며 그들에게 김씨를 소개한다.
이에 이씨와 장씨는 출소 후 곧장 대구로 내려가 김씨를 찾아간다. 대구로 내려가 만난 김씨는 지역에서 꽤 이름난 고미술품 관련 골동품을 취급하는 상점을 운영했으며, 범행 시엔 절대 앞에서 직접 움직이지 않고, 뒤에서만 범행을 모색한다. 김씨는 자신을 찾아온 이씨와 장씨가 S의 소개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전국 각지의 가정집이나 사찰 등에서 보관중인 고서화 및 유명화가의 작품이 있는 곳을 일러준 후, 장물을 훔쳐 자신에게 가져오면 그에 따른 값을 지불해 주겠다고 하며 역할을 분담해 준다. 여기서 권씨가 합류하게 된다. 이씨와 장씨가 운전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운전을 할 줄 아는 권씨를 불러 범행에 합류시킨 것이다. 배후조정자인 김씨, 물건을 직접 훔치는 이씨와 장씨, 장물을 운반하는 권씨 이렇게 이들 조직이 완성되고, 이들은 전국을 돌며 그림 및 고서화 등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동수사대의 수사 끝에 2000년 8월 모두 체포되어 10년 이하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03년 현재 까지도 이씨와 장씨 권씨는 청송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그러나 범행을 계획하고 지시한 김씨는 단지 '장물취득죄'만이 인정되어 몇 달간의 수감생활 후 출소하였다. 수사를 맡은 담당형사의 말에 따르면 김씨는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절도범들이 재범인 점을 이용해, 범행을 중도에 포기하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하여 지속적으로 범행을 시키고, 고서화에 상당한 지식을 갖춘 자로, 범죄미술품 전문가 중에서는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라고 전했다. 또한 김씨의 자택 수사당시 3-40평 정도의 창고에 고서화와 미술품이 가득 쌓여있었는데 증거가 불충분하여 압수에 실패하였고, 문화재청 조사반의 지속적인 수사협조만을 의뢰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김씨는 현재 자신의 아들에게 고서화 및 미술품 감정을 가르쳐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정보참모로서 활동하는 밤의 전문가들
2000년 4월, 조○○(두목), 김○○(행동대장), 박○○(중국 전문 장물 처분책), 민○○(화구 판매업), 제○○(일본 전문 장물 처분책) 외 행동대원 4명 그리고 박씨의 애인, 이렇게 10명으로 이뤄진 미술품 전문 절도단이 검거되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들 범행의 특성은 미술품전문가가 폭력조직 밑에서 활동하는 점이다. 사건의 대용은 다음과 같다. 장물처분 전문가들과 박씨의 애인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은 모두 전과 7범에서 15범인 자로, 교도소에서 만나 출소 후, 범행을 모의하게 되면서 조직을 갖추게 된다. 이들은 바로 전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노래반주기 등을 강·절도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던 중 중국에 장기체류중인 박씨 등을 만나 제 3국을 통해 미술품 등 장물을 처분 할 수 있고, 수사기관에 발각될 우려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술품을 전문으로 전문 절도범죄를 시작된다. 1999년 10월경, 이들은 부산 중구의 피해자 김씨 집을 손님으로 가장한 채 들어가 "신고를 하면 자식 손자까지 불태워 죽인다"고 위협하고, 운보 김기창, 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 등 총 25점의 보물급 문화재를 강취하는 등 체포될 때까지 약 50여 점에 달하는 고서화를 강취하여, 중국등에 장물을 처분해 왔다. 또한, 이들은 장물을 들고 인사동 등의 화랑을 오가며 장물 처분을 시도했다. 이들은 체포 시에 칼날길이 19cm의 식칼을 찔러대며 강력하게 대응하였지만 모두 체포되어 현재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어 실형을 살고 있다. 박씨의 애인 역시 절도에 직접적인 참여는 하지 않았으나 집안에 장물을 보관하였기에 '장물보관죄'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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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사에 도움을 주신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의 이종철 반장, 최영수 형사, 서울경찰청 조직폭력특별수사대의 장영권 형사, 문화재청 수사반의 강신태 반장, 청소교도소 측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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