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02 02:10:29,
구스타프 클림트와 같이 빈 아카데미 미술대학에 시험을 받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신 히틀러.
그 누구라도 악의 대명사인 히틀러에 대해, 긍정적인 표현구를 쓴다는 것은 자기무덤을 스스로 파는 일일것이다.
Adolf Hitler
사회가 혼란스러울때 가장 유망한 직업은 공무원이다. 세계1차 세계대전을 앞둔 19세기 후반 독일의 혼란기에 히틀러의 아버지 역시 히틀러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화가의 꿈을 꺽지 않고 끝내 미술대학으로 진학을 위한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보기 좋게 낙방을 하였다.
아버지 입장에서 볼 땐, 부모 말 안듣는 놈 꼴좋다 일지도 모르겠지만, 붙었다면 세계 역사가 어찌 되었을지 모를일이다.
그의 어눌하면서도 강한 자신감 실린 언변으로 대중을 휘어잡아 사실주의 미술계에 한획을 그었을지도 모를일이다.
또는 작가로서의 삶에서 스스로의 표현적인 발전을 가져 표현주의 작가로서 성장했을지도 모를일이다.
별로 웃기지는 않겠지만, 미술사에서 히틀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었을 수도...
Adolf Hitler "Germania" Red Pencil Sketch 1907-1912
히틀러의 주변인들에 의한 그의 성장기 내용을 보면, 그는 하지말라는 행동은 하지 않는 나름대로 성실한 청년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규학교 수업을 낙제하고, 아버지의 생각과는 다른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했다.
티셔츠를 바지 밖으로 꺼내 입고, 술과 담배 여자들와 어울리는 등의 청소년기와는 다른 방향의 학습부진아였다.
그는 아마도 수업보다는 공상을 즐기지 않았나 여겨진다. 종이의 빈 자리만 보이면 자신의 상상을 그곳에 실현시키며 미소짓던 소년이 아니었을까.
Adolf Hitler Church Spire 18.7 cm by 12.6 cm
히틀러는 대학 낙방후에도 그림은 계속 그렸다. 피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도 방안에 앉아 시간날때면, 방안 풍경을 스케치 하곤 했다. 집밖에서는 학살에 열을 올리고, 집에 들어와선 클래식 흐르는 방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상반되는 삶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유년시절부터 만들어진 것이라 본다. 성실한 외면 뒤에 무서운 상상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무엇이 그의 내면을 그토록 잔인하게 키워나가도록 만들었을까.
Adolf Hitler Mutter Maria("Mother Mary") oil painting 1913
히틀러를 떠올리면 유태인 학살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면, 그 어디에서도 학살스러운 모습은 찾기 힘들다.
만약 그가 내부에 키워온 야망을 실현시키지 못하였다해도 이러한 정물과 한가로운 풍경만을 그릴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스스로 위대하다 여기었던 자신이 나이가 들며 점점 비참해짐에 괴로워 격한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 붓을 들었을 것이다.
Painting By Adolf Hitler
갤러리와 미술잡지를 통해 여러 작품을 보다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작가에게 캔버스안의 내용을 현실에 실현해 볼 기회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 좀 진지하게 정리할라고 했는데, 낼 출근해야 되서 대충 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