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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노 요시유키 <닛케이 캐릭터즈> 인터뷰

Dunpeel 2013. 5. 7. 23:36

2004-10-04 19:17:50

 


경험이 미치는 영향?

 

토미노 요시유키 <닛케이 캐릭터즈> 인터뷰

하비에 관여하는 인간은 좀더 '자기자신'을 가져라

말로는 손님들이라고, 컨슈머라고 이야기하면서 원래는 '개별적'이어야 할 하비를 "단순한 소비품으로서 팔아먹지마라!"라고 먼저 소리높여 말하고 싶군요. 소위 '샤아 전용' 상품들에 대해서도, 정말로 눈을 끌 수 있는 '장점'은 없고, 단지 빨갛게 칠해만 놓고 '샤아 전용'이라고 이름붙은 상품들은 절대로 뭔가 잘못됐습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저 빨갛기만 하고 아무 뜻도 없는 상품들은 제 눈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설명: 건담의 주캐릭터로 등장하는 샤아는 붉은 전용기만을 사용한다. )

그런 상품은, 근본적인 욕구나 근본적인 필요성에서 만들어진 상품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빨갛게만 칠해놓고 상품이 된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샤아 전용 상품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팔려면, 그 상품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압도적인 부가가치를 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전제품이라면, 가전제품으로서 우선 완벽해야하고 '다른 메이커의 상품보다 절대로 성능이 좋다!'라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높은 퀄리티의 상품을 제공하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상품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디에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부품들을 주워다가 만들어놓고는, 그걸로 만족하는 스탭들을 보면 분통이 터집니다. 빨갛기만 하고, 실용성하고는 완전히 동떨어진 물건들까지 있습니다.

어쨌든, 우선 브랜드 파워를 키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브랜드 파워란, 곧 하이 퀄리티와 하이 이미지입니다. 그야말로 품위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품이 아니라면 샤아 전용이랍시고 나서지 말라고! 샤아 브랜드를 빌리려면, '샤아'에게 지지않는 뭔가를 갖추려는 기백이 없이는 의미가 없는 거지요.

가전제품 이외에도, 예를 들면 하비 상품이라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사랑받을 물건이 아니면 안됩니다. 단순히 팔기만 하면 되고, 소비만 되면 끝이라는 식의 물건은 애초부터 하비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비를 재미없는 비즈니스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적어도 하비로서의 건담 캐릭터에 관여하는 인간은, 크리에이터로서의 '자기자신'을 가졌으면 합니다. 만드는 사람 하나하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 정체성을 가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빚을 몇 년동안 갚는 한이 있더라도 꼭 사고 싶은 미술품과 같은 의미가 있음으로 해서, 하비란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팔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샐러리맨적으로도 무신경하게 느껴질 뿐이죠.


상품개발자는 좋은 취미를 가지는 것이 의무

상품개발자는, 좋은 취미를 가져야만 합니다. 매일 백화점 순례를 하고, 고급상점에 다니면서 아이 쇼핑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좋은 물건을 보는 것, 좋은 물건을 만지는 것이 좋은 상품을 개발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 폭에 250만엔짜리의 천이 있다면, 점원이 안보는 사이에라도 몰래 꼭 한번 만져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촉감, 색깔을 계속해서 접하게 된다면 미적 센스는 반드시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없이, 그저 유행에 휩쓸려서 가끔 고급품을 사기는 하지만, 평소의 쇼핑은 바겐 세일만 찾아다닌다고 하면 좋은 상품을 개발할 센스같은게 몸에 배일리가 없지요.

적어도 상품개발을 하는 사람이라면, 미술관 순례도 혈안이 되어서 하지 않으면 말이 안됩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의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두들 너무 무사태평입니다. 진지하지가 않아요. 브랜드 파워가 있으면 물건은 아무리 엉망이라도 팔린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건담 브랜드의 힘을 빌리면 돈이 들어온다.' 라는 저질 비즈니스 방식이 만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잡지의 부록으로 들어가는 작은 상품이라도 '이건 굉장한데!'라는 물건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공공의식을 전파하는 것을 잊은 우리들 세대의 죄

돈만 벌면 된다는 기업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을 보고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가, 좋은 어른이 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저희들 세대는 타자를 배척하고 경쟁하는 세대였습니다. 경쟁론밖에 없었고, 어떻게하면 돈을 벌지에 대한 생각밖에는 없었고, 전부 수치론으로만 생각했다는 반성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의식이라는 것도 다음 세대에 제대로 전해주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공공의식을 가지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들은, 개인이 공공에 대해서 어떤 의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전부 경제효율로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공공의 장에서 자신이 제공한 상품이 사람들을 얼마나 즐겁게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일상적인 피부감각이나 공공의식으로서 이해하지 못하고, 수치로 밖에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만, 결코 판매량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피부로 인식하는 의식을 다음 세대에 전하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인간은 그만큼 둔감한 생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일어서는 방법은 기초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무교육과, 거기에 이르는 유아교육, 한걸음 더 나아가면 거기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들의 관련성도 중요합니다. 현대인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능력이 퇴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원인은, '사랑'이라고 하는 원래 일본에는 없었던 개념을 의미도 모르고 함부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것을 일본인이 원래 갖고 있었던 '정'으로 승화시키지 못한게 원인이겠지요.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정을 주면 되지 않습니까! 귀여워해주면 되지 않습니까! 아이들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부모는 그 부분이 모자란 것은 아닐까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 촉감을 인식해라

제2차 세계대전후,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체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미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메이지 시대는, 어떤 의미에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새로운 '말'을 수입했기 때문에, 그것을 대중화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문화 속으로 융화될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전후에 받아들인 구미문화는 말, 문화를 융화시킬 시간도 없이 대중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는 진보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소위 문화인들이 마음대로 쓴, 무미건조하고 무절제한 직역이 대중에게 퍼져나갔던 것이죠. 그런 풍조 속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메이지 시대에 일본에 정착한 개념도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못한채 사용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공'이라는 말도, 원래 일본어에는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사회'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공공성이나 사회성이라고 말해도 감각적으로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딱히 오는 느낌이 없습니다. 공공성이라고 하는 것은, '체면'과 마찬가지로 피부로 느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접촉으로서 납득하지 않으면,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학교의 선생도, 그런 말에 대한 인식의 겨육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마을' 단위의 연대감이라고 할까, 조상신을 함께 섬기는 것과도 같은, 뭔가를 공유하는데서 오는 안심감이라는 것을 모두가 잊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다른 표현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종교적'이라는 말을 써야하겠습니다만, 일본인은 원래 종교적인 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국민입니다. 종교적인 것이 가지는 연대성, 그런 공감대를 갖고 있지 못하니까, 막연한 불안을 느낀 아이들은 가출하고, 원조교제로 돈을 벌어 갖고 싶은걸 사지요. 하지만 너희들, 그런 돈으로 산 브랜드 물건을 10년후에도 제대로 갖고 있을리가 없잖아!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봐! 라고 제대로 야단칠 수 없는게 문제입니다. 어른들이 효율론, 팔리면 좋은 것, 돈벌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살면서, '공공'이라는 말의 무거움, 촉감, 피부감각을 잃어버린 결괴입니다. 말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의무교육, 기초학력을 쌓아가는 단계에서 새롭게 태어난 말들을,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에 원래 있었던 말과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말해, '사랑한다'라는 것이 '정을 준다'라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세대가 너무나도 무지했던 '말씀씀이', '표현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상품을 만들고 싶거든 높은 신념을 가져라!

처음에 말한 '자기자신', '정체성'이란 말도, 만일 그런 말이 정말로 일본어로서 정착되어 있다면, 지금 30대 후반으로 건담 상품 개발의 중추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좀더 그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비라고 하는 것은 촉감이 중요한 것이고, 결코 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숫자만을 보면서 팔리기만 하면 된다는, 촉감을 무시한 상품전개는 정말 그만뒀으면 합니다. 캐릭터 산업의 생산과 마켓이 확대되고 있다면, 개발자들은 신념, 곧 높은 뜻을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좋은 물건을 만든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야말로 그런 시대가 도래해서, 팔기만 하면 된다는 과거의 수법은, 틀림없이 버림받을 시기가 오고야 맙니다.

예를 들면, 잡지의 부록 하나만을 보아도 큼직한 상자로 손님을 끌려고 하는 물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주제에 환경친화적인 기업이라고 합니다. 그럴려면 박스를 5분의 1로 줄여!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을 많은 기업의 인간들이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환경을 생각한다고 해도 이제는 통하지 않습니다. 물자가 넘쳐나는 포식의 시대에, 어설픈 지혜가지고는 추락을 막을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지금의 일본은 파라다이스입니다. 물자가 넘쳐나고, 전혀 긴장감이 없습니다. 인간은 생활에 수고를 느낄때야 말로 정신적으로도 풍성한 생활을 가꾸어 갈 수가 있습니다. 안이한 생활 속에서 깨달음과 이성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은 강하지 않으니까요.

다시말해, 지금의 일본인들은 긴장감의 결여에 의해서 자신의 진짜 소망, 물건에 대한 진정한 욕구조차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캐릭터 상품, 이미지 상품이라는 것이 장사가 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상실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너희들은 건담이라는 말만 붙이면 성능이 나쁜 가전제품이나 어설픈 하비 같은것도 그냥 만족해 버린단 말이냐! 라는 얘기를, 만드는 쪽에서도 사는 쪽에서도 자신에게 묻지 않으면 안될 시대가 된 것입니다.

원본 : '어른의 건담' by 닛케이 캐릭터즈( 2004년 5월호)
출처 : 백금기사의 기묘한 연구소 ( http://lgaim.egloos.com/i28 [새창에서 열기] )

 

 

토미노 요시유키(1941~) 는
건담의 아버지로까지 불리고 있는 메카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다. 물론 건담의 아버지라는 말이 마냥 칭찬인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그를 건담이라는 세계안에 묶어두는 굴레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그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건담을 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던 턴 에이 건담이 기존의 건담 팬들에게 외면을 받았던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쉽기 그지 없는 일이다.)

1941년 11월 5일 출생. 영화를 전공하였으나 졸업후 무시 프로덕션에 입사. 그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TV시리즈를 만든 감독중 한 사람으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선라이즈의 기라성 같은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따로 연표를 두고 봐야 할만큼 방대한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던가, 기존 메카물에서는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인 주인공급 인물들까지도 죽어버리는 스토리등을 과감하게 사용한다던가 해서 메카를 진지한 입장에서 접근하려는 수많은 매니아를 양산시켰다. (또한 일부에서는 그의 캐릭터 학살을 두고 캐릭터 학살 시리즈 1탄,2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