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지 않고서는 작품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 김은주의 작업은 특히나 직접보지 않고서는 이렇다 말하기 어렵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수많은 군상들의 뒤엉킴을 보게 된다. 살을 애는 차가운 검정에서 묵직한 따듯함의 검정까지. 종이위에 연필로 그렸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탄탄한 질감이 뿜어 나온다. 가느다란 연필심은 단지 긁어내는 듯한 힘의 선긋기만이 아닌, 인체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근육의 흐름에 맞춰 곡선으로 표하고자 하는 형태를 감싸 안으며 그어지고 있다. 부서지듯 맺힌 흑연가루는 빛의 방향에 달리한 선긋기에 의해 풍성한 입체적 면을 만들어 낸다. 그렇기에 김은주의 작업은 평면이 아닌 부조와 같은 입체적 작업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연필만으론 그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연필과 이를 쥔 팔이 하나가 되어 종이위에 부서지는 흑연의 고통을 함께 하였기에 가능할 것이다. 인사아트센터의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넘실거리는 파도와 군상들은 금방이라도 종이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팽팽한 역동성으로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artprice & raview 20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