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애매모호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쉽게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그대로 따라 행동하는, 즉 사회적 증거에 따라 행동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증거에 의한 행동유형은 대단히 애매모호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행동대로 행동하려 하는 경향을 보이는 ‘다수의 무지’라는 매우 흥미 있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뉴욕시의 퀸스(Queen’s)구에서 벌어진, 처음에는 평범한 살인사건에 불과했던 한 사건은 그 사건을 목격한 구경꾼들의 무관심 때문에 전국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제노베스라는 이름의 20대 후반의 여성이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근처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여 살해되었다. 뉴욕처럼 거대하고 번잡한 대도시에서 이러한 종류의 사건은 <뉴욕타임스>의 짤막한 기삿거리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사건 발생 일주일 후 <뉴욕타임스> 편집국장인 로젠탈이 경찰국장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살해된 제노베스가 오랜 시간 고통을 당하면서 수많은 목격자 앞에서 서서히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습격자는 무려 35분 동안이나 대로에서 그녀를 쫓아다니면서 3번씩이나 그녀를 칼로 찔렀고, 그녀가 습격당하고 있는 동안 38명이나 되는 그녀의 이웃들이 아파트 창을 통하여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어느 누구도 경찰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로젠탈은 이 이야기를 듣고는 <뉴욕타임스> 1면 톱 기사로 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전국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 소식을 접한 사람은 누구나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 상황에서 38명의 선량한 시민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구경꾼들 자신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던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사건을 사회심리학적인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너무도 많은 사람이 그 상황에 함께 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을 도와줄 개인의 책임감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도와주겠지’ 혹은 ‘이미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하였을 거야’라고 모든 사람이 생각한다면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은 결국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둘째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 중 ‘다수의 무지’라는 현상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에 위기 상황으로 보이는 사건이 사실은 위기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옆집에서 요란스럽게 싸우는 소리는 강도가 침입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유난히 시끄러운 부부의 말다툼인가? 괜히 잘못 끼어들어서 욕먹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혹시 정말로 강도가 들었다면 도대체 어찌할 것인가?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개인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조심스레 살펴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처럼 사회적 증거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가급적 당황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주위 사람들을 냉정한 모습으로 살피게 되는데, 모두가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비록 내부적으로는 당황하고 있어도 외부적으로는 모두가 침착하게 위기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적 증거 법칙에 따라서 그 상황은 위기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다수의 무지라는 현상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