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에서 마케팅 분야 만큼 관심사가 다양하고 변화의 속도가 빠른 곳은 드문 것 같다. 신제품 개발에서 마케팅 전략으로, 마케팅 믹스인 4P를 거쳐서 다음은 브랜드의 세상으로 그 다음은 문화 마케팅으로 옮겨간 다음 약간 주춤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온라인 마케팅, 바이러스 마케팅 등의 새로운 개념이 대두되고 있다.
이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마케팅 분야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공간연출 전문가인 크리스티안 미쿤다가 출간한 《제3의 공간》은 과거 마케팅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던 개념의 연장선상이 아닌 마케팅 분야의 새 장을 여는 개념일 듯 싶다.
이 책의 작가인 미쿤다는 제3의 공간을 “집과 일터에 뒤이어 도시에 연출된 장소나 공간들을 제3의 공간”이라고 본다. 제3의 공간은 도시 속의 내 집 같은 공간이라는 체험 공간 또는 장소를 활용해서 소비자와 고객을 사로잡으려는 기업의 전략이 숨어있는 곳이다.
이를 테면 예전에는 비엔나의 커피하우스, 모퉁이의 상점이 제3의 공간의 좋은 예였다. 지금은 사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마케팅을 위해 새롭게 고안해 낸 플래그십 스토어 같은 곳이 제3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서울을 예로 든다면 코엑스몰, 센트럴시티, 스타벅스, 파리크로와상 등이 바로 그런 곳이며 이러한 공간은 서울 각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제3의 공간이 매력적인 것은 판매와 구매라는 본래의 상행위와는 상관없이 소비자에게 정서적 충만함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제3의 공간들은 똑 같은 공식을 활용하여 사람을 끌어들이고, 돌아다니게 유혹하고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브랜드를 파는 회사는 모두 제3의 공간 창출에 전력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브랜드 세계 (brand land), 브랜드 랜드마크를 만들어서 고객과 비 고객들을 모두 자신들의 세계에 두고 싶어 한다. 최근 등장한 LG텔레콤의 Phone&Fun 스토어처럼 이동통신사나 패션기업들의 플래그십 스토어(체험판매장)가 좋은 예다.
오늘날 엑스포를 포함해 산업 전시회나 상품전시회에서 연출은 기술이나 가치의 혁신성 만큼 중요하다.
또한 서울의 트렌드 거리인 강남 대로에서는 주요 대기업들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두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 대해 미쿤다는 “플래그십 스토어는 고객이 자기 발로 찾아오는 3차원 입체광고의 현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간은 이제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출해야 하는 곳 이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고객으로 하여금 매장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하는, 제 발로 걸으며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라이프스타일 잡지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이제 나홀로 대형 서점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날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문화센터, 브랜드숍, 만남의 장소가 복합적으로 어울려져야 사람을 모을 수 있다. 고객이 체험하고 느끼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재미있어야 한다. 활기가 넘쳐야 한다.
앞으로 기업들의 소매매장도 재미와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 살아남고 무미건조한 대형 할인매장은 모두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소매매장은 ‘제3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라이프스타일 스토어들이 대체할 것이다.
이러한 제3의 공간 전략은 공공의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추진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공공을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제3의 공간을 꼽자면 바로 얼마 전 문을 연 청계천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고객들에게 가정과 일 외의 새로운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끌어들이는 공간마케팅이 중요해지면 이 제3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역시 중요해 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일본 하라주쿠에 자리잡은 프라다 매장의 건축물은 상상을 초월하는 건축예술 작품으로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매혹을 선사하고 있다.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구경하러 온다.
이처럼 제3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연출함으로써 고객들을 매혹시키고 끌어들일 전략을 세우는 것 을 저자는 ‘무드 매니지먼트(mood management)’라고 부른다.
수많은 멋진 레스토랑과 바, 테마파크와 공원들, 복합 쇼핑몰은 모두 무드 매니지먼트의 소산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기업의 복합적인 전략이 담겨있는 연출된 공간인 ‘제3의 공간’들은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제3의 공간’이란 사람들에게 삶의 균형을 찾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기업들이 마케팅 전략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라고 말한다. 고객의 미소와 환희를 추구하는 ‘제3의 공간’전략은 새로운 소비시대를 여는 키워드인 셈이다.
새롭게 연출되고 창조되는 ‘제3의 공간’은 우리 마케팅 세상에 새로운 빛이 되어 나타난 미래 지향적 마케팅 사고의 신기원으로 등장할 것이다. 미쿤다는 ‘제3의 공간’이라는 독특한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21세기 소비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꿰뚫고 있다.
이장우 이메이션코리아 대표(jwlee@imation.com) 1956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이장우는 3M 세일즈맨 출신 전문경영인으로 데이터 저장장치 전문업체인 이메이션코리아를 10년째 이끌고 있다. 경영학 박사이자 공연예술학 박사이며 3권의 책을 저술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