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17 13:20:51
2003한국실험예술제 what? upⅡ
실험예술, 대중화 비즈니스에 눈을 뜨다
글/dunpeel 사진/정대웅 기자
9월 15일, 「2003 한국실험예술제」의 갤러리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라메르를 찾았다. 전시장내엔 국내 실험예술의 지나간 기억이 사진으로 남아 질서 정연하게 걸려있다. 사진 한 장 한 장은 사고의 틀을 깨기 위해 몸부림쳤던 수많은 작가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조용히 입구를 통해 들어와 벽면을 따라 사진들을 바라보며 출구를 향해 이동하는 사람들. 그 관람 대열은 마치 기억해야 할 날이 올 때마다 특정 장소를 방문해 과거를 추모하는 이들의 모습과도 같다. 이러한 사진전에 대해 ‘18일의 짧은 예술제기간 안에 지나간 기록을 전시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운영이 아니냐?’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간 30여년의 국내 실험예술을 되짚는 시간으로 볼 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실험예술, 교류를 통한 교감으로 다가간다
본격적인 공연의 시작인 9월 17일, 실험예술 발표자와 참관자 그리고 수많은 매체의 취재열기가 갤러리라메르에 가득하다. 물론 이러한 인파 속엔 호기심에 대한 만족을 찾기 위해, 단지 이슈를 찾기 위한 관심도 있다. 그러나 2000년부터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이 추진해온 ‘실험예술의 대중화’ 운동으로 꾸준히 늘어가는 관객의 관심도 함께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실험예술은 꾸준한 창작활동을 펼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흔히 지금까지도 실험예술은 충격적인 볼거리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은데, 이는 1960년대 국내 행위예술의 시작 단계인 해프닝으로부터 자리 잡아온 실험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70년대 사회 비판을 소재로 한 이색적인 충격-이벤트에서, 다양한 장르를 접목한 80년대 퍼포먼스를 거쳐, 전문적인 퍼포머가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 종합적인 행위예술까지 국내 실험예술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으로 변모해 나갔다. 이에 대중은 이해하려는 노력을 일찌감치 포기하였고, 매스컴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 충격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실험예술을 음지로 몰아넣는데 일조하였다.
비단 실험예술에 대한 포기는 대중만이 아니었다. 예술계 전문가들 역시 방대한 실험예술계의 움직임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관객은 ‘퍼포먼스=난해한 충격적 볼거리’, 매스컴은 대중에게 ‘난해한 볼거리 제공’, 평론가는 ‘나중에 풀어야 할 난해한 문제’로 모두가 한마음으로 ‘퍼포먼스는 난해하다’를 외쳤다. 그래도 다행히 모두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그로기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퍼포먼스의 풀린 실을 하나씩 모아나가는 단체가 있었다. 2000년 3월 현시대의 문화예술과의 교감을 통해 한국실험예술의 교두보를 마련하고자 창립된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이 그들이다. 실험예술가들의 모임인 ‘KoPAS’는 창립이후부터 전국 곳곳에 100여회의 찾아가는 공연을 펼쳐나갔다.
이전의 개인적인 창작물뿐만 아니라 행사의 주제를 살린 작품을 공동 기획해 선보였는데, 이러한 활동은 대중들에게 실험예술을 접할 수 있는 폭 넓은 기회가 되었다. 또한, 2001년 2월 KoPAS는 인터넷에 동호회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객과의 대화를 주도하였다. 실험예술만큼이나 실험예술가는 다가가 말을 걸기 어려운 대상이기에 간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 동호회의 운영은 효과적이었다. 관객은 ‘실험예술을 왜 하는가?’부터 ‘행위 하나하나에 대한 의문’, ‘직접 참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까지 다양한 질문을 하고, 이에 대해 KoPAS는 질문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답변을 해나감으로서 실험예술과 대중을 잊는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2003한국실험예술제」의 공연팀장을 맡고 있는 문재선은 실험예술의 이해를 위해 “실험예술은 시와 같다”라고 말한다. 대중은 ‘시’를 접함에 있어 그리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 시를 읽고 쓰는 것이 교육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리하였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역시 공연을 보고 들으면서 그 안에 담긴 함축적 행위 표현을 읽어나간다면 그리 어렵지 많은 않다. 그러나 오랜 시간 충격적 행위만으로 인식되어온 퍼포먼스이기에 이러한 메시지가 한순간 전달되어 거리감을 좁혀나갈 수 없음이 안타깝다. 실험예술에 대한 이해는 우리 삶 속에 뿌리내린 고정관념을 흔들어 다양한 사고로 세상을 다시금 바라 볼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밀린 일기장을 메우고, 내일의 일기를 쓰다
지난 2002년 8월 7일부터 31일까지 홍익대학교 일대에서 국내 퍼포먼스계의 30여년을 정리하는 「2002한국실험예술제」가 열렸다. 「한국실험예술제」로는 첫 회 행사였지만, 국내 실험예술의 발자취를 한눈에 확인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중심지역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실험예술 축제이기에 「2002한국실험예술제」는 이례적인 대중의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올해 9월 13일 인사동과 홍대일대에 우퍼스피커의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2003한국실험예술제」가 지난해 선보인 30여년의 기록을 오프닝으로 장식하며 문을 열었다. 이는 KoPAS가 추진하는 다양한 실험예술제 중에서 「한국실험예술제」만이 대중에게 가장 기억되는 행사이기에, 매년 열린다는 점에서 단발적 행사로 인식되는 점을 경계하여 지난해 예술제의 기억을 되살리는 연결고리이자, 앞으로 보게 될 실험예술 무대를 더욱 뜨겁게 달굴 전야곡이다.
예술성과 대중성, 학술성이 함께하는 종합 예술 축제인 「2003한국실험예술제좦는 9월 17일, 인터넷을 이용한 채연정의 네트워크 퍼포먼스 {Info Performance}와 1967년 {투명풍선과 누드}로 최초의 행위예술가로 알려진 정강자의 {Big Brother Syndrome}이 오프닝 공연으로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채연정의 퍼포먼스는 신기술을 활용한 내일의 표현방식이자, 서로 다른 공간을 연결하여 「2003한국실험예술제」가 추구하는 교류를 통한 교감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었다. 오프닝의 메인공연인 정강자의 무대는 한국 실험예술의 30여년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잊는 의미를 가진 자리로, 한국의 퍼포먼스 30여년을 정리하고 실험예술의 내일을 알리는 무대였다.
또한 이날 오후 5시부터 2시간여에 걸쳐 한국실험예술의 개괄적인 역사와 앞으로의 대안을 짚어본 뜻 깊은 세미나 겸 좌담회가 열렸다. 본지 김윤섭 편집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1세대 퍼포머부터 이론가, 연출가, 젊은 퍼포머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부문을 대표하는 발제자의 생생한 경험을 정리하는 자리가 되었다. 참석자는 정강자, 성능경, 윤진섭, 문정규, 방효성, 심철중, 김백기 등의 국내 행위예술 관계자가 참여하였고, 호주의 여성 3인조 퍼포머 그룹인 크리에이티브 모빌리티(Creative Mobility) 회원들도 동석해 국제적인 활동 경험을 전했다. 이번 세미나 겸 좌담회의 세부내용은 행사를 마친 이후 발간되는 자료집에 자세히 선보인다고 한다.
「2003한국실험예술제」는 내용면에서 현재 퍼포먼스로 이해되는 실험예술의 진보적 확장무대와 타 장르와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실험예술무대로 나눌 수 있다. 갤러리라메르와 멀티스페이스 키친, 홍대앞 7개 클럽에서 열린 공연이 확장된 국내실험예술 무대라면,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일대에 펼쳐진 야외공연과 시어터 제로에서의 공연은 교류를 통한 실험의 공개무대인 것이다. 현재를 통한 예술성의 확장과 내일을 위한 실험예술, 두 가지 주제가 조화를 이루며 많은 관심 속에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이는 대중과의 대화의 통로를 마련하고 꾸준한 노력을 해온 결과라 하겠다. 전시 내용면에선 대중화를 위해 관객의 눈높이를 맞춘 공연이 아닌 대중이 편하게 접하는 타 장르의 작가를 매체로 한 공연을 준비하여 거리감을 좁혀 나갔고,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와 관객의 리뷰에 대해 전시 티켓, 기념품 증정 등, 대중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 방법이 이뤄졌다. 이러한 점에서 「2003한국실험예술제」의 특징은 관객과의 소통이 본격화된 실험예술제라 하겠다. 1967년부터 지난 30여 년간 계속 되어온 한국실험예술의 기록엔 관객의 뒷모습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 한국의 실험예술은 더 이상 그들만의 무대, 그들만의 일기장이 아니다. 「2003한국실험예술제」를 통해 새로 펼친 한국실험예술의 일기장엔 관객의 관심도 함께 써져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