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이 필요없는 사회를 추구하면서, 일자리를 만들기에 시급한 이상한 나라
90년대 후반 거래하던 인쇄소에 김부장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직함은 부장이었지만 인쇄소 내에서 마땅히 하는 일은 없었다.
인쇄소의 나이 어린 직원들도 형식상 부장님으로 부를 뿐 그를 대하는 태도에 상사를 대하는 예의는 없었다.
몇 개월 후 이분은 인쇄소에서 볼 수 없었다.
후에 이분에 대해 알게 된 건, 과거 인쇄소에서 필름교정 등의 업무를 하는 인쇄소에서 꼭 필요한 기술자였지만,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인쇄과정이 간소화되어 역할이 사라졌고, 자연스레 빈책상에서 시간을 보내다 견디지 못해 퇴직했다고 한다.
유럽이나 일본 쪽의 기관과 일을 하면서 가장 답답한 부분은 참을 수 없는 '느림' 이었다.
필요한 서류를 요청할 때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5분 안에 전달 가능한 문서를 한주가 걸려 받을 수 있었다.
유럽의 경우 휴가기간이 겹치면 몇 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오사카 현지 담당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이 부분을 질문하였다.
"책상에 잔뜩 쌓인 문서파일을 보고 조금 놀랐고, 방치되어 있는 구형 데스크탑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 편리한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 것이냐?"
오사카 현지 담당자 왈
"전자 시스템이 편리한 것은 알지만, 이전부터 해오던 업무방식이 있고, 업무별 담당자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 어렵다"
당시엔 변화에 주저하고, 새로운 것을 경계하는 비효율적 집단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름 의미 있는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인건비' 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모든 경제현장에서 전체 예산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다.
기술을 요구하는 전문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자동화 기계설비와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버스 안에서 손님들의 차비를 받던 버스안내원의 역할이 운전기사 옆의 작은 상자로,
자동차를 만들던 숙련된 전문 기술자들의 역할이 로봇으로,
관공서 등에서 서류를 발급해주던 직원들의 역할이 온라인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90년대 인터넷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력이 필요없는 사회'로의 변화가 본격화되었고, 수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없는 인력으로 사라졌다.
국가가 앞장서 인력이 필요없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다른 한편으론 실업률을 고민하며, 일자리 만들기에 매진하고 있다.
매번 선거의 최대 주요공약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를 없애는 것을 경제발전의 핵심과제로 삼으면서, 반면으론 일자리 창출로 고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소시급 인상등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쪽으론 서빙과 청소 로봇, 배달 드론 등 최소시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없애기 위한 기술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인력이 필요없는 사회를 추구하면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한 나라.
인력이 필요없기에 출산율이 중요하지 않지만, 세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출산을 장려하는 나라.
출산을 하여도 일자리가 없어 소비를 하지 못하고, 세금을 낼 형편이 안되는 인구로 가득한 나라.
두 가지를 모두 얻고자 한다면, 이것이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인가!
답이 없는 코믹한 전개만이 반복되며 애처로운 실업자만 증가하고 있다.
편리함도 없고, 경제성도 없다 하여도, 느려터짐에 답답하다 할지라도,
이전부터 있어왔던 그 사람이 서있는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일자리 창출이 아닐까?
새로운 일자리 창출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오늘의 일자리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리함과 경제성,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기술과 시스템은 고정된 인력을 포함하여 고민되고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